가장 기억나는 통화는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너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지. 여보세요. 귀찮다는 듯이 수화기 너머로 내던진 목소리는 차갑고 딱딱했어. 누구냐는 귀찮은 질문이 잔뜩 묻은 목소리에 3초간 말을 더듬었던 것 같기도 해. 모르겠어. 그냥 너에게 3년동안이나 답답하게 말 옥죄어오던 말들을 쏟아냈어. 아아. 얼마나 날 오랫동안 괴롭혔던가. 이렇게 짧게 끝이 날줄 누가 알았겠어? 침묵이 쏟아지더니 곧 왁자지껄한 주변소음이 수화기너머로 들려왔어. 누구야? 라는 물음에 너는 이전과 거의 변함없는 목소리로 건조하게 대답했지. 뭐라고 말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썩 기분이 좋진 않았어. 통화는 더 이어지지 않고 금방 끊겼지. 덩그러니. 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내 귓가에만 맴돌았어. 달빛이 비스듬히 구름에 가려 어설프게 쏟아지는 밤이었어. 네가 했던 말을 곱씹어보며 눈물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개운함같은 것이 밀려와. 심장은 너무 빨리 뛰어서 마치 그곳에 있던 운동장을 서너바퀴 뛴 것 같았어. 너는 내가 그 날 무슨 약을 먹었나 싶었을거야. 나도 내가 그 날잠깐 미친게 아니었을까? 라고 지금도 그렇게 회상하니까. 너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통화가 마침내 너와 내 사이의 마침표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는 쉼표였나봐. 그렇다고 네가 몹시 그리워 열병을 앓거나 그러진 않았어. 그냥 널 향한 그 마음 그대로, 3년동안의 그 마음이 그 날에 쉼표로 좌표처럼 찍혀있어. 나는 언제든 화가나고 우울해지면 그 쉼표로 되돌아가.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흐릿해진 너를 만나러 가. 너는 상냥하지도 않고 늘 그랬듯이 차갑고 건조하게 날 맞이해. 그럼 나는 수화기너머로 널 쳐다보고 너에게 속삭여. 네가 계속 나를 슬프게 해줬으면 좋겠어. 너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싶어. 그렇게 너를 계속 곪는 상처처럼 어루만지고 싶어. 이렇게 기억하는 내가 종종 이상하곤 해. 물론 지금의 너는 몰라보게 멋지고 잘 살고 있더라. 하지만 잘 모르겠어.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지금의 네가 아니라 그 때의 너인것 같아. 그래, 이제 두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 그게 너야. 나는 네가 (정말까지는 아니고) 그냥 싫었어. 색안경이라면 잔뜩 끼고 너를 바라봤고, 너라는 사람을 별로 알고싶지 않았어. 네가 이렇게까지 빈도수가 높은 기억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었지. 얼마나 네 눈엔 재밌어보이는 먹잇감이었을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었겠지. 왜 싫다고 멀어지려는 나를 붙잡아뒀니, 단순한 호기심이라기엔 항상 뭔가 미묘한 기류가 날 쭈뼛하게 만들었어. 내가 들고다니던 과자로 넌 눈치를 챘겠지. 얼마나 우스웠을까? 왜 날 미워하지 않았던거야? 그 때도 실타래처럼 너에게 점점 엉켜가는게 너무나도 당혹스러웠어. 너무 싫은데 동시에 네가 너무 궁금했어. 너는 얼마나 나와 다른사람일까. 뭐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나를 못 건들여서 난리인걸까. 우습게도 내가 가장 경멸했던 네가 결국엔 날 웃게 한 사람이었다는게 죄악스러워. 널 미워할수록 네 담배향기만 짙게 기억나. 네가 잡던 손깍지가 좋아. 네가 걷던 팔자걸음이 좋아. 그 비웃음같은 쓸데없는 자신감이 좋아. 유일하게 내 치부를 정면으로 보고도 무심했던 네 눈빛이 오히려 그 어떤 위로보다 강렬히 기억남아. 그래, 어쩌면 그 날에서야 나는 널 구원자로 받아들였나봐. 가끔 정말 아주 가끔 네가 생각나면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어 읽듯이 너를 찾아봐. 잘 지내고 있구나. 그냥 계속 그렇게 네 일기를 써 나아가 줘. 나는 여기 계속 머물러 있을게. 내가 너무 삶이 힘들고 괴로울 때 너에게 찾아갈게. 대답도 없는 너에게 그 날처럼 눈물을 보일게. 그냥 아무말도 하지말고 그 날처럼 나를 쳐다봐줘. 널 원망할 수 있게 해줘. 그럼 연락 끊을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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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Day Question · LayerLab